이승엽: 이승엽을 떠올리면 사상 최고의 1차 지명이라는 양준혁이 떠오른다. 양준혁이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좌타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희한하게 태극마크와 양준혁은 별다른 인연이 없었다. 최고타자로 군림하는 동안 지나갔던 98년 방콕, 2000년 시드니, 2006년 WBC 이번 베이징까지 그와 태극마크는 인연이 없었다. 양준혁은 레퍼런스가 되는 당해년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선발되지 않는다. 이승엽은 당해년도 2군에서 죽을쒀도 선발이 된다. 이승엽은 결과적으로 모든 국가 대표 선발에서 그의 진가를 보여줬다.
박진만: 박진만,심정수 FA 발표 당시 현대팬들과 김재박 당시 현대 감독은 심정수보다 인천 프렌차이스인 박진만에게 훨씬 더 큰 상실감을 표명했다. 투수 뒤에 존재하는 가장 큰 벽이라는 말이 걸맞게 타석에선 방망이 들고만 서 있어도 밥값은 한다는 박진만은 야수로는 최초로 두번째 40억대 FA에 도전한다. 김재박과 같은 화려함은 아니지만 전력을 짤 때 핵심변수로 놓아야하는 것이 바로 그의 수비력이다.
김동주: 프로 입단전부터 OB팬들은 우에하라를 두들기던 최고 거포를 기다려왔다. 입단전부터 팬들은 당시 중심타자인 김상호,김형석과 그를 직접 비교하는 결례(?)를 범했었다. 전해에 트윈스가 이병규를 pick하자 두산은 아무런 망설임없이 김동주를 잡았다. 우동수의 추억.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 한국이 참패를 하자 가장 많은 비난은 '왜 김동주를 선발하지 않았나'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이미 팬들은 국대 4번 자리에 김동주를 놓아두었었다.
류현진: 구대성은 마무리로서 100이닝 이상씩을 소화하던 수퍼마무리였다. 국대에서 구대성이 차지해왔던 비중은 단순한 하나의 불펜이 아니었다. 이제 팬들은 구대성을 잠시 기억 좀 뒤쪽에 놓아두어도 될 것 같다. 류현진의 체인지업 구사가 물이 올랐다. 세 시즌동안 리그 톱의 성적을 유지했다. 이제 이글스 팬들의 관심은 자기들이 2억 5천을 주고 데려왔던 수퍼에이스가 해외 리그에 진출한다면 얼마의 이적료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만 지켜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김광현: 상상한 이상의 성장. 그는 달마다 성장한다는 말을 한다. 류현진 프리미엄이라는 해석 속에 고졸 최고의 계약금을 받았다. 하지만 당해 성적은 약간 그것에 못미쳤다. 그러나 한국 시리즈부터 바로 화려하게 그 서막을 알렸다. 유연한 폼과 불같은 광속구 낙차큰 커브,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일본전 두 게임을 책임감 있게 운영하면서 큰 경기에 강하다는 프로선수로서 가장 강하다는 설명을 보장받았다. 82년 세계 선수권에서 비슷한 나이의 선동렬도 일본을 눌렀다. 다만 그 팀은 아마츄어 팀이었다. 인천은 류현진을 놓쳤지만, 실수를 두 번 하진 않았다. 야구의 지배자가 있다면, 너무 강력한 원-투 펀치는 별로 한국야구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윤석민: 무협지에서도 주인공은 바로 등장하지 않는다. 임태훈 몫까지 던져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더이상 비운의 에이스가 아니다. 불과 10년전까지만 해도 타이거스의 에이스는 한국 야구의 에이스였다. 10년간의 타이거스의 침체의 고리가 풀어질 조그마한 희망이 이번 베이징에서 그 싹을 틔웠다고 생각한다. 무너지지 않는 에이스.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에이스. 그에게 걸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김현수: 06년 드래프트에서 한기주는 10억의 계약금을 받았다. 당해년도 2차 지명자 류현진은 사상 최고의 신인시즌을 보냈다. 김현수는 그 해까지만 해도 철저한 무명이었다. 아마 시절에도 방망이 하나는 인정받았지만, 수비와 주루의 문제점과 근성이 약하다는 평가가 계속 따라다녔다. 08년도의 김현수는 접해본적은 없는 평가지만 장효조에 가장 근접한 정확한 타격을 하는 향후 대표팀 3번을 맡을 수 있는 그릇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이와세의 낮은공을 걷어낸 그 장면도 잊을 수 없지만, 최고의 장면은 미국전 2-0에서 지루한 커트 끝에 기어코 이끌어냈던 진루타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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