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에 해당되는 글 58건

  1. 2008/11/25 스타 리플레이
  2. 2008/11/13 교육
  3. 2008/11/04 사람 대 사람
  4. 2008/10/18 인연
  5. 2008/10/09 고마움
  6. 2008/10/05 아직은
  7. 2008/10/01 호국정신
  8. 2008/09/29 프로
  9. 2008/09/23 영혼
  10. 2008/08/21 소외

스타 리플레이

스타를 잘 하진 못하지만 예전에 한국에서 스타 리플레이를 보다보면 티비 중계와 큰 차이를 느낀다. 엄재경과 캐스터의 오바 섞인 중계가 빠진 것 이전에 그 프로그레스바 때문에 게임이 언제 끝날줄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관전하는 태도가 굉장히 달라진다.

"아 이 상황을 못엎고 그냥 지겠구나" 이런 견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생도 비슷한 면이 있는게 언제 죽을줄 안다면 사람들은 조금 더 계획적으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가 내년에 아니 뭐 한 3년 후 쯤이라도 죽는다고 그렇게 알려준다면, 그리고 그 시간동안 병원에 기대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다면 난 당장 학위부터 그만둘 것이다. 수년 내에 죽는다는 데 나에게 학위는 의미가 없다. 아마 고시를 공부하던 사람도 고시를 그만둘지도 모를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내가 학위를 하고 있는 이유는 꽤 긴 미래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언제쯤 죽을줄 알지만 난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지금 사는대로 인생을 적당히 허비하면 살아간다.

그런데 내가 만일 가장이라면 어떨까? 가장이라면 3년 후에 죽는다면 난 당장 직장을 관둘 수 있을까?

아닐 것 같다. 다니던 직장을 더 열심히 다니고 애들한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가르쳐주려고 애쓸 것 같다. 그리고 나 없이도 안정된 기반 아래에서 애들이 자라도록 이런저런 시스템을 갖추어 놓으려고 최대한 애를 쓸 것이다.

생각해보면 결혼을 하는 것은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를 통째로 바꿔버리는 그런 사건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거꾸로 추적해서 올라가보니 남들이 결혼과 출산에 자꾸 당위성을 부여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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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교육에서 평범한 삶의 고단함과 그 평범해지기 위해 남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가는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런면에서 위인전 읽기는 별로 권장할만한 것이 아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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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대 사람

1. 친구 놈이 체대 나와서 한 회사 보안업무하는델 들어갔다. 들어가서 배치받자마자 하는 일은 300개에 달하는 차 번호판을 외우는 일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그 번호판의 경우 보안검사를 하지 않기위해서였다. 난 이런과정이 정말 이해가 안간다.

보 안이 필요한 데여서 보안업체를 상주시킬 정도의 기관이라면 모든 사람이 들어갈때 검사를 받으면 될 일이다. 간단히 신분증을 제시하고 얼굴을 확인하거나 신분을 확인하는 과정. 오히려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거추장스럽게 여긴다는 것이 좀 우스웠다.

사람이 잘나가기 시작하면 자기를 귀찮게 하는 모든 것이 싫어지나보다.

2. 사람이 어느순간 어느지위에 올라가면 대우가 좋아진다. 남들이 좋은 소리만 한다. 자기가 지나갈때 빵빠레가 울리고 남들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과정이 일상이 된다. 나 예전에 연구소 있을때도 과기부에서 국장 하나 온다고 아침부터 전 연구소 직원들이 1시간 먼저나와 청소하고 플랜카드 걸고 다 나와서 차들어올때 박수치고 웃는 얼굴의 이쁜 여직원이 나가서 꽃다발 주고 그랬다. 그러고서 한 10분쯤 휙~ 둘러보고는 연구소장이랑 어딜 간다.

물론 저러지 말라고 그러면 그때부턴 아래 사람들 일을 더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에 그냥 아래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감사히 저런 것들을 당해주는 것이 미덕인지도 모른다. 내가 이 얘길 하니까 어딘가에선 한번 누군가 뜨면 그 앞 도로의 아스팔트를 다 세제랑 걸레로 닦았다는데 믿거나 말거나지만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가보다.

3. 어릴때부터 장학관 참관수업이라도 하면 선생님들이 지어보이던 억지미소와 본적도 없는 누군가 온다고 아침부터 뭔가 필요없어보이는 곳까지 치우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사실 높은 사람 뜨는 날이 '간만에 대청소 하는 날' 정도로 생각하면 뭐 그만이다. 대중속에 1인이었으니까. 내가 정작 불쌍한 사람들은 그 빵빠레 받으면서 지나가는 사람이다. 대부분 자기가 원해서 그곳까지 간 것일테지만 분명 가슴 한 곳에서 외로움의 감정을 느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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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인연이라는 개념을 처음에 누가 제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까이고 난 후에 마음에 안정을 찾는덴 거의 인연이라는 컨샙만한게 없다고 생각함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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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움

아무것도 아닌 나를 알아봐준 누군가 - 그것이 학창시절 스승이 되었건 직장 상사가 되었던 조강지처가 되었던간에 -

그 고마움은 반드시 평생 기억해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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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아플까봐 더 겁을 내기보단 상처줄까봐 더 겁을 내는 사람이길 원했다. 

그런데 요즘 냉정히 되짚어보니 이제 나의 사고방식은 그런 것과는 좀 거리가 멀어져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간의 관계란 나에겐 크리스탈 세공과도 비슷하게 다가온다. 

심혈을 기울여 깎고깎다가도 한번 칼이 엇나가면 그 상처가 매우 확연히 들어나는 그런 크리스탈 세공, 그래서 더욱더 힘들다. 

살면서 주게되는 굉장히 많은 상처들은 부지불식간에 주게되는 것 같다. 그리고 정작 당사자는 별로 인식하지도 못한다. 

그게 인간관계에서 너무도 힘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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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정신

국군의 날은 왜 안쉬고들 그러나.

좌빨들의 선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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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1. 프로의 definition은 직업선수다. 그것을 하면서 돈을 버는 선수. 하지만 이것은 1차적인 아주 rough한 정의일 뿐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좀 더 많은 말들이 들어가야한다. 

2. 프로의 핵심은 최소한 내가보기엔 고용 불안정성이다. 한 두 해 성적이 부진하면 옷을 벗을 각오를 해야한다는 것이 바로 프로의 핵심이다. 세상에 굉장히 많은 직업은 '부진'이라는 것을 정의하기도 어렵다. 프로제도는 사용자에겐 매우 속편한 제도다. 쓰고 싶은 사람만 골라쓸 수 있고 마음에 안들면 언제든지 내칠 수 있다. 사실상 자신의 재능을 이용한 자영업자들이다. 프로야구선수들은 국세청에서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과세를 한다. 프로야구단은 법인이 아니다. 고용안정 규정을 지킬 의무가 없다. 그냥 개인사업자들의 모임이다. 

3. 이런 개인사업자의 모임이 아닌 고용인들의 모임이 되려면 조직이 기본적으로 무거워진다. 이런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공화국의 이념은 '개인사업자'의 모임으로는 도저히 달성될 수 없기 때문에 사회는 일정부분 무거운 조직을 유지한다. 난 솔직히 공무원 조직이 기민할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한다. 적당히만 해먹어도 B+이상. 아래 을들을 유/무형으로 착취하는데 익숙한 갑들이지만, 뭐 이를테면, 당연히 해주어야하는 행정적인 지원이나 업무를 을들에게 전가하면서 신발신발 욕을 들어먹더라도 그 틀을 깨지않을 레벨을 지킬줄 안다면 (을도 먹고살 수 있음) 그것은 뭐 보통은 가는 것이라고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4. 경쟁의 논리를 도입해 저런 갑질을 막겠다는 것은 내가보기엔 망상이다. 공무원은 바뀌기나 하고 벌어봐야 지돈은 아니니 적당히 갈구고 일떠미는 수준이지만 KTF나 삼전 SKT같은 놈들이 아래를 어떻게 후려치고 못살게 구는지 보면 중소기업을 어떻게 벼랑끝으로 내모는지 보면 시장 독점에 의한 갑질이 훨씬 더 악랄할 수 있다는 것을, 고용불안에 노출된 갑질의 문제가 더 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난 공무원 조직이 더 기민해져야한다는 식의 주장엔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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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영혼은 화초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 가꿔주고 살펴주지 않으면 시들어 죽어버린다. 

영혼을 무관심 속에 내버려두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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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1. 흔히 경제력 차이에 의한 소외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난 이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2. 예전에 한 대학에서 티칭하시는 분인

"원서도 못읽는 놈들을 어떻게 대학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하는 걸 듣고 좀 반대 의사를 표현한 적이 있다.

난 저것이야말로 지적사치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최소한 내가 배우던 시절까지만해도 고등학교 수준의 영어공부를 이수했다손 치더라도 상당수는 원서를 읽기 힘들어했다. 원서를 읽지 못하면 공부가 하기 힘든 이유는 그만큼 한국어로 구축된 학습의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지 그 학생들만 탓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혼자 공부해도 리딩은 충분하지 않냐라고 말을 하지만 난 그것 또한 지적사치라고 생각한다. 상당수는 '어지간히 게으르지 않고서야 어찌 서울안에 집 한 채 없을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할테니.

3. 어린시절 수능 상위 0.5%에 만족하지 못하고 0.1% 0.01%를 위해 자신을 더 몰아치는 분위기를 경험해봤던 아이들에게 경제력인들 사회적 권력인들 0.1%에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을 인정하기는 매우 수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 그렇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주 솔직히 말을 하면 우리는 결국 조금 더 위를 보고 그것을 상대로 자신을 단련시킬 수 밖에 없다. 밑을 봐서는 어지간해서 단련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보다 연구를 좀 더 잘하는 사람, 잘하는 나라, 잘하는 학교등을 보며 무엇이 다른가를 비교하고 필요한점을 배운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경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난 여기서 자칫하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한 가지 본다.

소위 얘기해서 어떤 집단이던 - 그것이 작고 협소했을지라도 - 그 집단에서 우수했던 아이들이 더 큰 집단과 상대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이 를테면, 서울대의 연구비가 하버드 대학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적더라도, 난 일부 분야라고 할지라도 경쟁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 이유는 그 아이들은 자신의 출생이 한정한 닭의 머리의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반은 비교할 수 없어도 유승민이 올림픽 메달도 따고 한국 야구가 일본 미국과도 국대 수준에선 경쟁이 되는 것은 그들이 기본적으로 닭의 머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마 한국 탁구 100등이랑 중국 탁구 100등이 경쟁하면 비교도 안될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이 아이들이 간혹 소를 보고서 좌절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사실 소와 경쟁해야하는 닭의 머리들은 아닌 머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사실 만리장성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한국 탁구선수는 정말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문제는 닭 내에서도 선택받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닭의 머리와 경쟁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우수함의 근거가 소에게 가져온 어떤 것 - 이를테면 - 넌 영어 원서도 못읽냐는 식의 것이라면 그것은 닭의 머리들의 지적 자만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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